지난 주말에 작은 방에 있던 침대를 큰방으로 옮겼습니다.
침대를 사용안한지 이미 오래... 점점 창고방으로 변해가는 작은방이 심란하기도 했지만
왠만하면 그냥 살자던 남편이 고생을 감수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도담이였습니다.

회사 일로 새벽까지 컴퓨터를 해야하는 남편은
아이 재울 때마다 말없이 눈치 주는 아내와
자다가도 깰듯이 뒤척이는 아들 때문에
화는 못내고 한숨만 쉬는 날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침대 하나 옮기자고 시작한 일이 거의 이사 수준이었습니다.
침대가 워낙 커서 큰방에 있는 물건들 정리를 하다보니
저녁때쯤 끝날줄 알았던 일이 밤 11시가 넘어서야 어느정도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저는 도담이 보느라 제대로 도와주지도 못하고
남편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답니다.

" 오늘 나 고생했으니까 저녁으로 뭔가 보상을 받아야 겠어! "
" 그럼 오랜만에 59피자 셋트로 시켜먹을까? "

혼자서 낑낑대며 이방에서 저방으로 물건 나르는 남편이 안쓰러워서
괜히 옮기자고 했나... 하는 생각에 많이 미안했는데
피자 한판, 치킨 한마리로도 남편은 너무너무 좋아했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더 미안하더라는...

그런데 막상 옮겨 놓고 나니 남편이 제일 좋아합니다.

" 난 이제 여기서 자면 되는거야? 아~~ 좋다~~ "
" 그렇게 좋아? "
" 응~ 좋아 ㅋㅋ 고생했는데 이정도 보람은 있어야지~ "

괜히 저 약올리려고 일부러 더 좋은 티를 내는 것 같아서
저도 부러 서운한듯 한마디 했습니다.

" 아들때문에 침대 옮겼더니 남편이랑 한방에서 별거하게 생겼네~ "
" 왜~ 서운해? 그럼 이리 올라와~ "
" 도담이는 어쩌고? "
" 같이 올라오면 되지 ㅋ "
" 안돼! 도담이 몸부림 심해서... 떨어지면 어쩌려구! "

솔직히 침대 옮기기 전에도 전 도담에게 딱 붙어 자고 남편은 저만치 떨어져 자고 그랬습니다.
아이가 있으니 어쩔 수 없더라구요.
어쩜 남편 입장에선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었겠다 싶기도하네요.

저보다 먼저 결혼한 친구도 아이낳고 안방 침대를 거실로 옮기고
남편은 거실 침대에서 친구는 아이와 안방에서 그렇게 지네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뭐... 저흰 그거보단 나은건가요? ㅋㅋ
그래도 조금 서운한 마음은 드는군요.



몇일 후...
방 구조가 바뀌면 도담이가 낯설어할까봐 살짝 걱정을 했는데요
왠걸요~ 오히려 더 잘 노는 것 같습니다.
컴퓨터가 없으니 잠도 더 잘 자는 것 같고... 고생스러웠지만 잘 한 것 같아요.




" 아침 사과는 보약인거 아시죠? 저랑 사과 한조각 하실래요? "

자고 일어나 퉁퉁 부은 얼굴로 사과 한조각 들고 뒹굴고 있는 도담이~~^^;;




남편도 아주 숙면을 취하고 있습니다.
일어나라고 몇번을 깨웠는데 저러고 있네요...ㅋ



도담이도 자기 잠자리에서 편안하게 뒹굴고~~

아침마다 도담이가 옆으로 굴러와 아빠를 발로 툭툭 차서 구석으로 몰아 넣고는
저는 대자로 뻗어 편하게 자고 아빠는 차가운 바닥에 쪼그려 자게 한다고 투덜댔었는데
이젠 그럴 일 없을 것 같네요^^;;




여전히 뭔가 복잡하긴 하지만 그래도 침대가 빠지고나니 훤해 보이는 작은방입니다.
제가 아늑하니 자취방 같다고 했더니 남편이 그러더군요.
이정도면 고시원에서 특특실 정도는 된다고... ㅋㅋ



도담이도 작은 방이 무척 맘에 드는 모양이에요 ㅋㅋ

나름 신혼집 분위기 낸다고 포인트 스티커 사다가 큰방을 꾸몄었는데
옮겨 놓고 나니 뭔가 좀 허전해 보입니다.
도담이 사진이라도 몇장 걸어둬야 겠네요^^

Posted by 연한수박
도담이 이야기2011. 9. 21. 07:10


서울서 전주까지... 안밀리면 2시간 반이면 가는 거리를
명절때면 5시간 이상씩 걸리니 늘 남편이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하지만 도담이 때문에 대중교통은 엄두도 못내고 있었는데요
지난 추석엔 큰맘 먹고 버스에 도전을 해보았습니다.

다행히 김포공항이 가까이 있어서 공항버스를 이용하기로 하고
혹시 좌석이 없을걸 대비해 남편이 일찍 퇴근을 하고 왔습니다.

최대한 짐은 간편하게...
커다란 여행가방 하나에 도담이 짐, 저희들 짐 할 것 없이 모두 구겨 넣고
급하게 쓰일 물건들만 기저귀 가방에 챙겨서 집을 나섰습니다.

남편은 금방 자다 깨서 얼떨떨한 상태였던 도담이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여행가방 위에 앉혔는데요
그길로 도담이는 공항까지 가는 내내 여행가방에서 내리지 않았습니다. ㅎㅎ

택시를 타려고 잡았더니 김포공항 간다니까 그냥 쌩~~ 가버리시고
저희는 그냥 지하철을 타기로 했습니다.




" 아이구... 나도 한번 밀어보자. "
지나가던 왠 아저씨가 대신 밀어주겠다며 다가서는데
흠칫 놀란 저희 남편은 옆으로 얼른 피하면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걷고 싶어서 매일 나가자던 아이가
걸어가자 내려 놓아도 싫대고, 안아줘도 싫대고 한사코 가방만 타겠다고 하니
보는 저는 재미있었지만 운전수 노릇 해야하는 남편은 무척 힘들었답니다.



구부정한 자세로 아이까지 태운 가방을 밀고 다니려니 허리는 아프고
지나가는 사람들 꼭 한번씩 쳐다보니 부끄럽고 민망하고...
차 운전하는 것 보다 더 힘들었다더군요 ㅋ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지하철을 타고 공항에 도착~

제법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어서
혹시 자리가 없을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5시에 도착한 전주행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4시간 동안 
도담이는 울지도 않았고 심하게 보채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지도 않았습니다. ㅡ.ㅡ;;

목적지에 도착해서 짐을 내리자 마자 여행가방을 보더니 또 태워달라는 도담이 ^^;;
마중을 나온 시부모님도 그 모습을 보시고는 배꼽을 잡으셨습니다.
" 그걸 타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가 있어?! 허허허 "

이렇게 버스 여행의 첫 도전은 별 탈 없이 성공적(?)이었다 말할 수 있겠지만
다음 번 명절에도 버스를 이용할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카시트 태워서 가는 게
도담이도, 저도, 남편도 더 편하다는 생각이 간절했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달 말에 부산에 있는 친정에 갈 때는 비행기에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비행기로 1시간, 버스로 1시간~ 두시간이면 친정에 갈 수 있다고 하니
묵혀만 두고 있던 마일리지로 비행기표를 예매해 두었답니다.

엄마는 신혼여행 때 처음 타본 비행기를
우리 도담이는 두돌도 되기 전에 타보는군요.
부디 그 때도 아무 사고없이 무사히 다녀오길 빌어 봅니다.
 
Posted by 연한수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