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한번씩 물건을 잘 잃어버립니다.
평소엔 괜찮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꼭 한번씩 일을 터트린답니다.

결혼식 전날엔 차키를 잃어버린 적도 있습니다.
분명히 잘 둔다고 뒀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더랍니다.
보조키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이것도 건망증 증세인가요?

결혼식을 앞두고 부산에 있는 제 짐도 옮기고 예물도 맞출겸
남편이 저를 데리러 차를 몰고 부산까지 왔습니다.

새벽 4시쯤 도착한 남편은 무척 피곤해 보였는데요
이렇게 혼자 장거리 운전한 건 처음이라더군요.
중간에 잠이와서 정말 혼났다고요.

그날 오후... 옷이랑 신발, 책 몇권에 화장품 등등... (생각보다 짐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미리 싸놓은 짐을 남편 차에 싣고 전주에 있는 시댁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시어머니와 남편과 함께 예물을 맞추러 갔는데...
예물 고르는 것도 힘들더군요.
원체 악세사리는 잘 안해서 그런데 관심없이 지내다가
고가의 예물을 고르려니 어떤게 좋고 이쁜지 분간이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예물때문에 한나절을 보내고
저녁 식사를 한 후 서울에 있는 신혼집으로 출발~~
한밤중에 도착해서 짐정리는 다음날 하자고 간단한 것만 챙겼습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타려는 순간 남편이 " 아차! " 그럽니다.

" 왜? "
" 어떻하지? 부산 가던 날 엄마가 와있어서 열쇠 드리고 간걸 깜박했네... "
" 그럼 어떻게... 지금 다시 전주로 갈 수도 없고... "
" 그러니까... 나 왜이러냐... 분명히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

정말 대략 난감이었습니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화도 안나고 웃음만 났습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죄송했지만 그래도 답답한 맘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저흰 열쇠 가지러 다시 내려가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머님이 서울가는 리무진 기사 아저씨편에 보내 주신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죠~ 

저희는 다시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몇시간만 기다리면 되는데 딱히 다른데 가기도 그렇고...
차에서 눈좀 붙이려고 했는데 잠도 안오더군요.

날이 밝아오자 어머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첫차로 보냈으니 공항으로 찾으러 가라고... 리무진 번호와 도착시간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마터면 그 리무진도 놓칠뻔 했답니다. ㅡ.ㅡ;;

그렇게 아슬아슬 가는 차 붙잡아서 열쇠 받아서
신혼집 정리도 잘 마무리하고 결혼식까지 무사히 치뤘습니다.

그 후로도 남편의 이 몹쓸 버릇은 사라지질 않아서
잊을만 하면 툭 튀어나와 사람을 무척 당황시켰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완전히 잃어 버리진 않고 어딘가에서 찾긴 찾는다는거네요. ㅋㅋ

사실 저도 건망증이 있습니다.
근데 이것이 결혼을 하고 애 낳고 살다보니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이젠 둘이서 합작으로 그러니 사라진 물건 찾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군요.
둘중 하나는 괜찮아야 하는데...
 
Posted by 연한수박


저는 남편과 꼬박 1년을 연애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제대로된 사랑이란 걸 해본적도 없었고
결혼에 대해서도 상당히 부정적이었던 제가
남편을 만나 1년만에 결혼까지 한 것은
주윗사람들에게는 물론 스스로에게도 무척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둘째 딸은 알아서 연애도 하고 결혼 얘기도 오가는데
큰 딸은 동생먼저 보내라며 선도 안보려고 하니 엄마 속은 타들어갔지요.

그런데 친구가 절 만날 때마다 사촌오빠 얘기를 하는겁니다.
성격은 어떻고 외모는 어떻고 집안은 어떻고...
그러면서 한번 만나보라고 평생 혼자 살거냐고 했습니다.

결국 저는 소개팅에 나갔습니다.
여동생 원피스 빌려 입고 안하던 화장까지 하고...
그렇게 남편을 만났고 결혼을 전제로 사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제가 결혼하겠다고 하면 두손 들고 기뻐해주실 줄 알았던 엄마가 반대를 했습니다.

엄마가 반대하시는 이유는 남편 때문이 아니라 저 때문이었습니다.
워낙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에 미련 곰탱이에 남자도 모르는 자식이라
엄마가 골라주는 남자와 결혼을 해야 맘이 놓일 것 같았던 거죠.

거기에 남편이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과 직장이 서울이라는 점이
엄마를 설득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전라도 남자와 경상도 여자가 결혼하면 힘들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고
서울로 시집 가버리면 자주 못볼텐데 부산 사는 사람이랑 하면 안되겠냐고요.
엄만 제가 남편을 좋아하는 마음이 일시적 감정일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랑 다투기도 많이 다투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래도 아빠가 제 입장에서 많이 배려를 해주셔서 엄마를 설득하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상견례도 하고 날짜도 잡고 엄마랑 혼수도 보러다니고
그렇게 별 무리없이 결혼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그런데 청첩장 인삿말이 문제가 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희 시댁은 시어머니가 아주 신앙이 깊으신 기독교 집안입니다.
그래서 결혼식 주례도 목사님이 해주셨습니다.
당연히 청첩장 인삿말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글귀로 적길 바라셨고 그렇게 정했습니다.

저희 친정은 제사는 지내지만 특별한 종교를 믿는 건 아닙니다.
당시에 저는 교회에 나가긴 했지만 믿음이 깊지 않았고
친가와 외가쪽이 같은 종교가 아니었기에 별 문제가 없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청첩장 초안이 나오고 친정 부모님께 보여드렸더니 탐탁치 않아하셨습니다.
친지분들중에 절에 다니시는 분들도 있고 주위에 교회에 안다니는 사람이 더 많은데
괜히 그런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줄 것 같다구요.

이일로 또 엄마랑 실랑이를 벌여야 하나 고민이 되었습니다.
시어머니를 설득하기는 더 힘들 것 같았거든요.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단번에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 별일 아니구만 또 혼자 고민하고 있었어? 인삿말을 다르게 쓰면 되잖아? "
" 그게 가능할까? 똑 같이 써야하는 거 아니야? "
" 불가능한게 어딨어?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업체에 한번 물어봐. "
" 만약에 안된다고 하면? "
" 그건 그때 다시 생각하면되지~ 아마 될거야. "




그렇게 만들어진 저희들 청첩장입니다.
시부모님도 친정 부모님도 만족스러워 하셨답니다.

결혼할 때, 결혼 하고 나서도 종교 때문에 갈등을 겪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저희는 그런 심한 갈등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남편의 지혜로 더 큰 갈등으로 번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결혼은 당사자들만 좋아서 되는게 아님을
그때 결혼 준비하면서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양쪽 집안이 잘 지내는 데는 저희들 역할이 참 중요하다는 것두요.

지금 저희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살면서 어렵고 힘든 일들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남편과 저는 다짐을 했습니다.
다른 효도는 못해도 이거 하나만은 꼭 지키자고...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 보여드리자구요.

Posted by 연한수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