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부산은 정말 멀었습니다. 초기에는 거의 매주 만났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한 달에 한 두번 보기도 어려워 지더군요. 회사일이 바빠서... 집안일 때문에... 어쩔수 없는 사정이 생기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서울서 혼자 생활하는 오빠에겐 경제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많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매주 KTX를 타고 내려오는 오빠를 보면서 장거리 연애 선배인 여동생이 ( 여동생 커플은 천안-부산을 오간답니다. ) 했던 말이 생각 나네요.
" 지금은 처음이니까 그렇지 조금만 있어봐~ 자금 압박에 시달리게 될거야~ "

정말로 그 시기가 오게 되자 우리는 전화로 위로를 삼았던 것 같습니다. 요금제도 커플로 바꾸고 매일매일 통화를 참 오래도 했었어요. 주위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로...ㅋ

친한 친구랑 통화를 해도 할 말이 없어서 금방 끊어 버렸던 제가 그렇게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으니 이상스럽기도 했을거에요.

 

특히 가족들 반응이 재미있었어요. 여동생은 잠 못자게 한다고 툴툴거리고 엄만 전화세 많이 나온다고 잔소리 하면서도 무슨 얘기하나 옆에서 가만히 앉았다 가고 남동생은 볼때 마다 '아직도해?' '또해?' 그랬답니다. 

오빤 주 5일제라 금요일 밤에 내려왔는데요 저희 회산 주 5일제가 아니어서 토요일 저녁에 잠깐 보고 일요일엔 기차시간 맞추느라 늘 시간에 쫓겨야 했습니다. 정말로 기차를 놓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두어달쯤 지나서는 저희 회사도 주 5일제를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었어요. 처음 시행할 땐 이래저래 힘들었는데 적응이 되고나니 일주일이 금방 지나가더군요.

 

덕분에 좀더 여유롭게 만날 수 있어서 얼마나 좋던지... 토요일은 하루종일 함께 있을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당일치기로 몇번 가진 않았지만 제가 서울로 올라가기도 했어요.

 

오빤 교통수단도 KTX 에서 고속버스로 바꿨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긴 하지만 요금이 배이상 차이가 나니까요.

 

거의 1년을 이렇게 보냈는데요 자주 볼 수 없어서 힘들고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만날 날이 기다려지고 헤어지는게 안타까웠습니다. 거리가 멀다는 게 불편하긴 했지만 어느 시기가 지나니까 그 불편함에도 익숙해 지더군요.

 

장거리 연애가 힘들다곤 하지만 서로에게 정말 좋은 사람이라면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듯이 오히려 장거리 연애가 더 어울리는 연인도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우리도 그런 경우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Posted by 연한수박

소개팅을 하고 뒤숭숭한 마음으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또 만나기로 하긴 했지만 이 만남을 계속 이어가도 좋을지 판단이 서질 않았어요.

 

' 그냥 만나 보는거야~ 뭐 어때? '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나중에 헤어질 때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만나 보기도 전에 헤어질 때를 걱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인 건 알지만 결혼 생각이 없던 저로선 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일요일... 약속 장소에 나가면서도 마음이 많이 복잡했습니다. 오늘 만남으로 앞으로 어떻게 할 지 결정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우선은 솔직한 내 심정을 얘기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면 상대방도 어떤 쪽으로든 대답을 할테니까요.

 

두번째 만남...... 역시나 어색했습니다. 만나자마자 수줍게 장미꽃을 한다발 건네 주시는데 너무 뜻밖이고 당황스러워서 고맙단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덕분에 분위기는 더 어색해 졌답니다. 졸업식 때 말고는 꽃다발을 들고 다닌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가뜩이나 사람 많은 서면 거리를 꽃다발을 안고 걸어 다니려니 어찌나 부끄럽던지요. 그런 제 모습에 그분도 적잖이 당황을 하셨다더군요.

 

차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그러다보니 금새 저녁이 되었습니다. 저녁 식사는 스파게티...조용하고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어요. 그러면서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일전에 잠시 사귄 사람 얘기부터... 어떻게 헤어졌는지...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솔직히 누굴 만날 자신이 없다고 털어 놓았습니다. 이쯤 되면 기분이 나쁠 만도 한데요... 전 그분도 마음을 접을거라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들은 대답은 좀더 만나 보자는 거였어요. 마음 아프게 안할테니 한번 믿어보라고요.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도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다시 만날 약속을 했답니다.^^

 

꽃을 가지고 집에 들어서니 부모님은 깜짝 놀라시고 동생들도 신기하게 바라보는데 왠지 쑥쓰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계속 만나 볼 생각이라니까 다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하더군요.

 

이렇게 우리는 처음 한 고비를 넘겼습니다. 고비라고 하기엔 너무 시시한가요? 하지만 그당시 전 아주아주 심각했었답니다. 오빠도 그때 제 얘길 들으면서 이걸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내가 싫어서 그러나,,,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만약에 그때 오빠가 절 잡아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거에요~^^;;



Posted by 연한수박

스물 아홉이 되던 날...전 이미 삼십대가 되어 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해서 집,,,회사,,,집,,,회사,,,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9년 이라는 시간이 허무하고 후회스럽더군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저는 다시 무미건조한 제 삶 속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나이 꽉찬 딸이 선을 보래도 싫대고 결혼은 생각도 안하고 있으니 엄만 오죽이나 답답했겠어요? 선 자리 있다는 말만 들어오면 그냥 한번 만나만 보라고 성화였습니다. 물론 전 끝까지 싫다고 했지요. 두살 아래인 여동생은 벌써부터 결혼 얘기가 오가는데 말이죠.

 

그렇다고 제가 독신주의는 아니었습니다. 소개팅도 해봤고 한번이지만 선을 본적도 있고 잠깐이지만 사귄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자신감은 없어지고 결혼에 대한 두려움만 커졌습니다.

 

그런데 언제 부턴가 친구가 절 만날 때마다 사촌 오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직업이 어떻고 성격이 어떻고... 장점이며 단점까지...그러더니 한번 만나보라 했습니다. 그 친구 어머니께서도 꼭 소개시켜 주고 싶다고 하셨다네요.

 

몇번을 거절하다 결국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 얘길 듣고 엄마도 은근 기대하는 눈치였어요.

 

드디어 소개팅 날~ 동생 원피스에 구두까지 빌려 신고 안하던 화장까지 하고 출근을 했습니다. 평소와는 너무 다른 제 모습에 회사 사람들도 놀라워 했답니다. 친구와 언니들에게만 소개팅 한다고 살짝 얘기를 했는데 잘 생각했다며 잘하고 오라고 응원을 해주었습니다.

 

동래의 어느 돈까스 집...친구 어머니께서도 함께 나오시는 바람에 더 긴장이 되었습니다. 친구와 먼저 가시면서도 얘기 잘 나누라며 제 손을 꼭 잡아주셨어요.

 

저녁 식사가 나오고 먹는 동안은 거의 대화가 없었습니다. 그 어색함이란......그분도 긴장을 많이 하셨는지 식사를 제대로 못하시더군요. 그 앞에서 전 꾸역꾸역 다 먹었답니다. 암튼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서울서 오신 분이라 부산 지리를 모르셔서 제가 안내를 해야 했는데요 저도 길치인데다 그 지역은 잘 몰라서 참 난감했습니다. 길을 모르면 아무데나 들어갈 일이지... 구지 친구가 알려준 커피숖을 찾겠다고 그 주위를 한참 헤멨던 생각이 나네요.^^

 

커피숖에선 얘기를 꽤 많이 나누었습니다. 어색함을 없애려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참 많이도 하셨어요. 저는 거의 듣는 쪽이었지만 (정말 열심히 들었습니다^^) 기분 나빠 하지 않고 편하게 해주시더군요.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이렇게 편한 느낌을 받을수 있다니... 낯을 많이 가리는 저에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기도 했고 그분이 길을 모르시니 전 혼자 버스를 타고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버스 정류장 까지만 같이 가자고 그랬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안신던 구두를 신고 다녔더니 발도 아파왔구요~

 

그때 갑자기 저보고 기다리라며 급하게 어딜 다녀 오시더니 택시로 집까지 바래다 주시더군요. 어찌나 고맙던지... 그리곤 다음 주말에 또 올테니 만나자고 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그 먼 거리를 또 오겠다고요...(나중에 들었는데 잠시 어딜 다녀온게 택시비가 모자랄 것 같아 찾으러 간거였대요ㅋ)

 

소개팅 후...다시 만나기로 했다니까 주위에선 잘됐다고 하면서도 신기해 했습니다. 

 

그땐 이 만남이 결혼까지 이어질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Posted by 연한수박